존재하지만 상관 없는 것 Eugene Mayu Kim, 2020에 대한 글

FYI*

2019학년도 2학기 수업 [002579-501] 교양독일어(1)에 대한 설명

이 수업에서는 시의성 있는 학습교재를 사용하여, 독일어 기초 문법, 어휘, 문장 등을 학습하고, 학습한 내용을 시청각 자료(CD 등)를 듣고 반복 연습을 한다. 이를 통해 독일어를 처음 접하는 (초급) 학습자는 학습한 내용(문법, 어휘)을 활용하여 단문장을 올바르게 만들고, 또 각 문장에서의 쓰임을 정확히 이해한다. 더 나아가 단문장을 활용하여 일상생활에서 독일어로 기초적인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운다.

Prologue

2019학년도 2학기의 나는 대학교 3학년이었고, 그때 처음으로 독일어를 배웠다. 학기 중 깜짝 퀴즈 문제 중 『머나먼 섬들의 지도』의 서문이 인용된 적이 있었다. 세 문단 정도가 소개되었을 뿐인데, 그 날 하루종일 머릿속에서 여운이 가시질 않았다. 이후 결국 『머나먼 섬들의 지도』를 구매하게 되었고, 책의 삽화와 내용이 흥미로워 몇 번이고 읽어보며, 소개된 섬들을 모두 구글링 했던 기억이 난다. 특히 그곳에 얽힌 신비로운 이야기들은 정녕 허구인지, 실존하는 역사인지 혼동될 정도로 자극적이다. 종강을 하고 난 후에야 알게된 사실은, 당시 수업을 진행해주신 권상희 교수님께서 이 책을 번역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흥미의 이유는 어쩌면 내가 그곳에 실제로 갈 확률이 거의 0에 수렴하기 때문이며, 지금 이 시각에도 실존하는 생명의 섬들을 내 멋대로 지나치게 낭만화하고 있다는 것에 조금씩 멀미가 났다. 만약 나의 존재와 공간에 대해 누군가 '이것은 판타지'라고 의심한다면, 그때 나는 과연 어떤 기분일까?

한편 우리는 이런 태도에 무의식적으로 머물러있던 적은 없는지 돌이켜보기 시작했다. 예컨대 먼 나라의 인권을 키보드로 저울질 하거나, 입법 예정 항목 중 자신과 정치적으로 무관한 것들은 우선순위를 가리어 정당을 선택하는 일들 말이다. 지리책을 우화집으로 대하는 나의 자세가 한껏 더 역겨워졌다.

머나먼 섬들에 대해

유디트 샬란스키의 『머나먼 섬들의 지도』는 절대로 가보지 않을 50개의 섬들에 관한 삽화와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 누구의 소유물도 아니었던 섬이 인간 사회로부터 발견되어 명명되면서, 이전과는 새로운 에피소드가 만들어진다. 이것이 기록 되어 비로소 역사로 다뤄진다. 한편, 놀랍도록 흥미로운 이야기 때문에, 독자들은 기록과 전혀 다른 제3의 시공간과 인물 등을 창조하며 ‘자연스럽게’ 섬을 의인화하게 될 것이다. 무척 제멋대로.

인간문명은 자연에게 이름을 붙이며 새로운 의미와 추억 만들기를 즐기는 것 같다. 때때로 지리적, 문화적, 시대적 차이 등에 따라 양식의 차이를 보인다. 그렇지만, 동족에서 기인하는 어떠한 교집합이 있을 지도 모른다.


존재하지만 상관없는 것들에 대해

한편, 모두 각기 다른 모양의 섬들처럼 인간들은 모두 개별적인 삶을 산다. 어떤 사람은 이미 누군가로부터 명명되고 작화되어 태초의 계획과는 전혀 다른 삶을 경험하고 있을 것이다. 교집합의 영역은 그리 크지 않을 수도 있다. 지구 반대편의 누군가를 가만히 앉아선 절대로 발견할 수 없는 대척점의 세상처럼 말이다. 너무나 기본적이고 단순한 성질들만이 공통되어 그것이 감히 공통점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섬의 발견 및 명명 과정, 독자가 이끄는 섬의 의인화, 개별적 삶 사이의 공통점과 이질성 등은 어떤 관계를 맺게 될지 궁금하다. 누구도 방문한 적 없었던 작은 섬, 누군가 방문했기에 지도에 기록된 섬, 아직 기록되지 않은 미지의 공간들, 그 지도를 관찰할 수 있지만 절대로 가지 않을 우리.

이상 나열된 감상에 대해 2020년의 Eugene은 글과 영상, 사진과 음악 그리고 음향을 통해 표현을 시도했다. 누구도 갈 수 없지만 모두가 알고 있는 가상의 장소, 연기한 배우의 영혼과 신체는 실존하지만 누구도 영상 속의 '그녀'를 실제로 만날 수 없다는 점을 상기하며 즐겨주시길 소망한다.



Eugene Mayu Kim에 대해

15살 때부터 영화감독을 꿈꿔왔다. 하지만 정작 영화과에 진학하고부터 제작 현장에 있는 자신을 마주하기가 두려워졌다. 그리고 25살에는 첫 직장에서 희망퇴직을 하게 됐다. 무언가를 만들고 싶은 인간으로서의 순진한 영혼은 물론 노동자의 기본적인 권리까지 '영화는 결과의 예술'이라는 정신으로부터 박탈당하며 설상가상-첩첩산중으로 환경 오염에 일조할 수 밖에 없는 과잉 압축된 일정에 시달려왔다.

이러한 끔찍한 현장과 미친 효율성을 추구하는 기업가 정신에 지친 나머지, 대안적인 제작 환경에 대한 연구를 지속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어 그는 2년 전부터 자신의 명함에 ‘대안영상제작환경연구가’, ‘Alternative Filmmaking Environment Researcher’ 라는 명칭으로 에둘러 거창하게 직업을 소개하기도 한다. 현재는 또 딱히 'Filmmaking'이 전부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여러 매체에 열려있다.

그래도 Eugene에게 연출과 제작이란 고난과 고통이 아닌 친구와 떠나는 바다 여행처럼 듣기만 해도 즐거운 일이고 싶다. 머문 자리에 흔적을 남기지 않는 아름다운 현장을 가꾸고자 노력하는 것은 덤이다. 주로 영상을 생각과 소통, 자가치유의 매개체로 삼지만 사진과 음악, 에세이 등 역시 다양한 공간에서 정렬하고자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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